2021년 요한복음 제 8 강 주일예배 메시지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말씀 / 요한복음 6:1-21

요절 / 요한복음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오늘 말씀에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네번째와 다섯 번째 기적이 나옵니다. 특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4복음서에 공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물위를 걸으신 기적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져야 하고 행동하는 것도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빌립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도전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깊이 발견하고 오병이어를 드리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Part 1.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그 후에는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고 종교지도자들과 안식일 논쟁을 벌이신 후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바다라고도 불리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그곳은 벳세다라는 마을이었습니다.(9:10) 벳세다는 갈릴리 바다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오늘의 주인공 빌립과 안드레의 고향이었습니다.(1:44)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에게 전도훈련을 시키시고 따로 한적한 곳에서 쉬기 위해 가셨다고 나와 있습니다.(6:30-32) 오랜만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빌립과 안드레의 고향마을로 한적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거기에 예수님 일행을 따르는 큰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에는 무리들이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표적들을 보고 따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은 Sign으로서 다른 궁극적인 것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표적이 가리키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일행이 벳세다에 도착하셨을 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때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나와 있습니다.(14:14)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보셨습니다.(6:34) 예수님은 목자없는 양들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신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갑자기 경치좋고 물좋은 벳세다에서 여름수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다른 복음서에는 몰려온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다 저녁이 되고 날이 저물었다고 하였습니다. (14;15, 9:35, 9:12) 모두가 예수님이 전하시는 은혜로운 말씀을 듣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다른 제자도 아니고 유독 빌립에게 물으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빌립이 그때 예수님 옆에 있어서 얼떨결에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것일까요? 6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Test입니다.

 

학생들은 보통 시험을 싫어합니다. 혹시 시험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나요? 시험날짜가 기다려지고 선생님 시험은 언제 보나요, 아 시험 빨리 보고 싶다말하는 학생이 있나요? 정말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지 꼭 시험을 볼 필요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나는 세시간 공부했다, 문제지 10장 풀었다, 책 한권 다 읽었다고 말하며 공부 열심히 했다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시험본다고 하면 다했는데 뭘 시험까지 보냐고 합니다. 시험보면 자기 실력이 다 드러납니다. 다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만 보면 다 뽀록납니다. 시험을 못보면 부끄럽고 창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의 목적은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고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없다면 성장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사랑하셨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성장시키고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내신 시험문제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시각은 날이 저물어 벌써 저녁이 되었습니다. 장소는 산위요 아무것도 없는 빈 들입니다. 빌립은 이곳이 자기의 고향이니까 근처에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살 편의점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시험문제를 잘 풀려면 먼저 문제를 꼼꼼히 읽고 나서 출재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다시 한번 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우선 예수님이 지금 이상황에서 이렇게 물으시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날도 저물고 다들 배고픈 상황에서 예수님이 이런 민감한 말씀을 그냥 하실 리가 없습니다. 6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이미 다 생각해 놓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미 그들을 먹이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때문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긍휼의 역사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미 양들을 먹이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알고 예수님과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먹이시기로 이미 작정하셨습니다. 이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회사의 CEO가 연초에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한번 정하면 정해진 것입니다. 군대 사령관이 진격할 목표를 정했으면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해진 방향과 목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혼자 먹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심정의 사람,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먹이십니다. 빌립은 먹이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빌립이 살펴보아야 할 예수님의 질문에우리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빌립이나 다른 제자들 뿐만아니라 예수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빌립은 시험문제를 풀 때 반드시 예수님을 염두에 두고 풀어야 합니다. 또한 영어성경에는 Where shall we buy bread라고 나와 있습니다.‘어디서빵을 살 수 있는가? 어떻게 how, 방법이 아니라 장소입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는 빈 들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장소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먹일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동안 말씀만 가르치는 보통의 랍비, 선생님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분이고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치시고 38년된 병자를 일으켜 세우신 분이었습니다. 이제 단답형 시험지에 답을 적는 빌립의 손끝이 떨렸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빌립의 대답은 정확하게 현재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짧은 시간내에 사람들의 숫자와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빵의 양과 그 빵을 살 수 있는 시장가격을 파악해서 정확하게 계산해 내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 노동자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니까 10만원으로 치면 그것은 오늘날 금액으로 2,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햄버거 하나씩 사줄려면 얼마가 필요할까요? 우선 빨리 사람 수를 세야 합니다. 와퍼는 너무 비싸니까 가성비 좋은 불고기버거로 하기로 합니다. 세트와 단품을 잘 조화해서 가장 경제적인 가격을 뽑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장정만 5,000,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해서 필요한 금액을 계산한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빌립같이 되고 싶어합니다. 책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해서 모르는 게 없어야 합니다. 각종 자격증을 따서 스펙의 끝판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세상도 이런 사람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 가서도 스마트하고 똑똑하다는 소리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빌립의 결론은 이백 데나리온이 없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야 할까 물으셨는데 어디서 빵을 사는 것 이전에 이백 데나리온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자 이미 작정하셨는데 빌립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상황 판단을 잘 하는 유능한 젊은이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이 부족했습니다. 부모는 돈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도 어찌하든지 자식들을 먹이고 교육시킵니다. 목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이기 때문에 양들을 돌보며 맹수가 나타나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웁니다. 자신이 양들의 목자라는 정체성과 책임감이 있을 때 양들을 돌보고 먹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심정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실력 있는 지도자감 이었지만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빌립의 약점을 잘 아시고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빌립은 3년 동안이나 가까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들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빌립이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말씀해 주셨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먹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먹일 수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이 빌립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릅니다. 머리로는 아는 것 같은데 실제 삶에서는 항상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이백 데나리온이 없다고 말합니다. 현실 앞에서 분석도 잘하고 생각은 많은데 결론은 힘들겠다, 엄두가 안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알지만 예수님께 내 인생을 온전히 맡기지 못합니다. 이처럼 빌립의 머리로 하는 신앙생활은 항상 부정적이고 한계적이고 답답합니다. 현실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빌립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눈앞의 현실과 자신만을 바라보며 계산하고 분석하는 그의 머리신앙을 심정의 신앙, 믿음의 신앙으로 바꿔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께 믿음으로 들고 나오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Part 2.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

 

8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빌립이 시험성적표를 받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갑자기 저쪽에서 안드레가 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9) 안드레는 자기 것도 아니고 무리가운데 있던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도시락을 가지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고 물고기는 보리떡과 함께 반찬으로 먹는 소금에 절인 생선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런 음식은 어린아이 도시락용으로 적합했습니다. 안드레는 자기가 봐도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5천명 앞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누가봐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드레가 상황파악도 못하고 현실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엉뚱한 안드레는 누구입니까?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입니다. 그는 시몬 베드로처럼 복음 역사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들이 안드레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소개를 받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 즉시 자기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는 눈이 파란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와서 쏼라 쏼라 말하며 예수님을 뵈옵기를 청했습니다. 그때 빌립은 외국인을 부담스러워하며 안드레에게 말했는데, 안드레는 즉시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갔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에게 있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예수님께 가져오는 확신의 사람이요 긍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도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먹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없는 것을 찾지 않고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있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찾다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가져왔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것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혹시나 그것을 주님께 드리면 어떤 역사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가운데 주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비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꼬투리로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단한 능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부족하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자들, 연약한 자들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기드온도 포도주틀에서 밀타작하는 쫌생이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했을 때 보리떡 같은 300명으로 수만명의 미디안을 무찔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7) 복음 역사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을 믿음으로 드릴 때 그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고 재능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목자의 심정과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목자의 심정과 믿음이 있다면 안드레와 같이 각자 자신에게 있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그대로 받으시고 많은 영혼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하라 하시니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예수님은 제자들을 시켜서 사람들을 잔디에 앉도록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숫자를 셀 때 남자성인만 세는 것을 감안하면 그 곳에는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약 2만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11절을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예수님이 안드레가 가지고 온 오병이어를 가지고 처음 하신 것은 하나님께 감사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2만명의 배고픈 사람들 앞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고 있으면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이것 뿐이냐, ‘정말 이것 밖에 없는가하고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감사기도를 드리셨을까요? 하나님 아버지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그가 가져온 것은 작지만 여기에 믿음과 심정이 담겨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는 데에는 이 오병이어로 충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소서. 이 오병이어를 통해서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여주소서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마치시고 떡과 물고기를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눠주시는 떡과 물고기를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배달했습니다. 빌립은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오병이어로 사람들이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만큼 풍성히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낭비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배부르게 먹을 뿐만아니라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에 가득찼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풍성히 먹고도 남는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3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잘 몰랐습니다. 머리로는 너무 많이 배워서 잘 알고 있었지만 삶속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머리로는 알았지만 예수님께 제 삶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습니다. 빌립처럼 예수님이 옆에 있어도 항상 내게 있는 시간과 물질을 계산하고 계획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고 한계적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일은 엄두도 못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쓸 시간도 부족하고 물질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3년전 하나님은 신실한 양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양은 저희 안암2부 목자님들이 드린 오병이어로 하나님이 키우신 양이었습니다. 현주사모님이 처음 캠퍼스에서 씨를 뿌렸을 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양이 거절했습니다. 이후 때가 되었을 때 장동우 목자님과 제가 토요 전도모임에 나가서 우연히 만났을 때에는 양의 마음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후 교회 목자님들의 오병이어가 드려졌습니다. 매주 레베카 사모님이 미션하우스에서 식사를 챙겨주셨습니다. 임상순 목자님이 필요한 때마다 맛있는 음식으로 섬겨주시고 제가 브라질수양회에 가있는 동안에는 말씀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임병철목자님은 바쁜 일정가운데서도 경기도까지 데리고 다니며 맛집 탐방을 시켜주었습니다. 양이 2019년 여름수양회에 Full로 참석하는 일은 정말 오병이어의 역사였습니다. 양의 가정의 핍박속에서 비밀리에 평택에서 수양관까지 아침 저녁으로 양을 실어 나르는 일은 미션 임파서블이었습니다. 김인태 목자님, 홍이삭 목자님께 부탁만하면 자원해서 운전을 해주셨습니다. 양이 힘들어지고 제가 돕기 힘들어졌을 때에는 위로의 마음을 가지신 김이삭 목자님이 일용할 양식과 말씀공부로 섬겨주셨습니다. 양이 센타에 상주하고 공부하고 있을 때마다 우리 학생목자님들과 홀리졸리 맴버들은 좋은 친구와 선배가 되어 주었습니다. 같은 약대시험을 본 한나목자님은 양이 두려워할 때마다 자상한 누나가 되어 위로하고 믿음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인 작년에 양이 장염으로 고대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홍이삭목자님이 운전해주시고 누가목자님이 응급치료를 잘 받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지난 3년간 섬긴 양이 인제대학으로 가면서 느낀 감정은 이 양은 하나님이 붙여주셨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드린 오병이어로 자란 양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병이어를 받으셔서 한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양이 인제대학으로 떠난 뒤 저의 마음은 시원 섭섭함이었습니다. 한동안은 내 자유시간이 늘어나서 좋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양을 섬기면서 알게 된 하나님의 마음이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평생 자기사랑 속에서 살던 죄인이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빌립처럼 자기생각과 계획으로 신앙생활해왔는데 양을 섬기면서 내 일정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길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에도 토요 전도기도모임은 캠퍼스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목자님들이 토요일마다 자신의 오병이어를 드리는 이 귀한 모임에서 저도 오병이어를 계속해서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장동우 목자님과 국교과 1학년 학생을 만나 관계성을 맺게 하시고 매주 일대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방향은 분명하였습니다. “오병이어를 내게 가져와라 그럼 내가 원대로 먹여주마

 

저는 이 일들을 통해서 죄인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의 남는 시간, 나의 물질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을 오병이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병이어를 드리는 것조차도 나의 일정과 계획의 일부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주님께 드리는 삶은 한계적이고 제한적이었습니다. 일정이 조금만 틀어지고 내 생각과 벗어난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예 내 인생을 주님께 오병이어로 드리면 어떨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시간과 물질과 체력은 언제나 나를 위해 쓰려고 할 때 부족합니다. 열심히 썼지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시간과 물질과 체력이 바닥나기 전에 주님이 이런 보잘것없는 인생을 오병이어로 받으시면 어떻게 배불리 먹이실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 삶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삶은 사람들로부터 죄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자유합니다. 하루하루의 삶가운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까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흥분됩니다. 제가 빌립처럼 계산하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회개하고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제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사람들은 오병이어 사건을 표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그 선지자는 신명기 1815절에 기록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뜻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그런데 표적을 본 이후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놓고 자기들의 떡문제를 해결해 줄 경제 대통령으로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동안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200만명을 만나로 먹이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생명의 떡이 되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병이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내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기도하시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예수님은 홀로 산으로 가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방향을 좇아 다시 가버나움으로 가고자 갈릴리 바다에 배를 띄웠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예수님 없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중에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 4~5km정도의 거리를 저어 갔습니다.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바람과 파도로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배를 향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물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이 일이 가능한 분은 오직 그 자연의 법칙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뿐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워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14:26)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말라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기뻐하며 예수님을 배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 탄 배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빠져 죽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위를 걸어서라도 자연의 법칙을 초월해서라도 언제라도 내 인생의 배에 오르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큰 풍랑 가운데서 함께 하셔서 우리를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두가지 표적을 보았습니다. 사람들도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에게 이 표적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빌립처럼 계산하며 부정적이고 한계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한계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삶의 방법을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게 있는 작은 오병이어, 내 인생의 오병이어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은 기뻐 받으시고 감사기도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원대로 먹여 주십니다.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우리에게 이 예수님의 심정과 믿음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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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년 요한복음 제 
말씀 요한복음 6:1-21
요절 요한복음 6:11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 큰 무리가 왜 예수님을 따릅니까(1,2)?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어디에 앉으셨습니까(3)? 때는 언제입니까(4)?
 
 
 
2.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무슨 질문을 하셨습니까(5)? 이런 질문을 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6)? 빌립의 대답에 나타난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7)?
 
 
 
3. 안드레는 누구를 데리고 왔으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8,9)?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10,11)? 원대로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4.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얼마나 되었습니까(12,13)? 사람들이 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했습니까(14)? 예수님은 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십니까(15)?
 
 
 
5.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어떤 어려움을 만납니까(16-18)? 예수님은 어떻게 그들에게 오셨으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19,20)? 그들은 어떻게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까(21)?